[사설] '전문가 무시' 졸속 국가사업 이대론 안 된다

입력 2019-11-03 17:37   수정 2019-11-04 00:21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발간한 ‘2020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 보고서는 정부가 올해 의욕적으로 도입한 국민참여예산 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국민참여예산제는 중앙정부의 예산 사업 선정·심의 과정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제도다.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게 도입 취지다. 하지만 졸속 추진과 사업 대상 선정 과정의 전문성 부족 등으로 상당수 사업이 지체되고 효과도 제대로 검증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업 준비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38개 국민참여예산 사업(928억원) 중 25개는 예산 실집행률(8월 말 기준)이 50%를 밑돌았다. 민간시설 내진보강 활성화 지원(22억5000만원) 등 5개 사업은 예산을 한 푼도 쓰지 못했다. 정부는 행정 절차 지연과 홍보 부족 등을 핑계로 대고 있지만 급하지도 않은 사업에 예산부터 배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데도 정부는 내년 국민참여예산을 올해의 세 배 수준인 2683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허술한 사업 심사와 예산 배정에 대한 우려도 높다. 국민참여예산 후보 사업들을 압축하고 투표를 통해 사업 선호도 등을 제시하는 ‘예산국민참여단’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예산국민참여단 400명은 성·연령·지역별 대표성을 감안한 ‘통계적 추출’을 통해 선발됐다. 입안 단계부터 각 부처에서 사업타당성이 걸러지는 정부 예산사업 결정 방식과 대조적이다.

예산국민참여단의 교육 과정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사전 교육(50분)과 온·오프라인 교육(110분) 등 총 160분의 교육이 전부다. 3시간도 채 안 되는 교육을 받고 수백억원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의 효용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상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뽑는 예산국민참여단이 사업 필요성과 효율성을 제대로 검증한다고 보기는 무리”라는 전문가들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비(非)전문가인 예산국민참여단이 투표를 통해 사업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사업의 경제성을 따지기보다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또 다른 형태의 현금 나눠주기식 허드레 일자리 사업’이란 비판을 받는 ‘바다환경지킴이 지원 사업(해양수산부)’의 경우 내년 예산 배정액(66억4400만원)이 올해(8억1000만원)보다 일곱 배 넘게 늘었다. ‘국민 참여’로 포장한 선심성 정책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를 낳게 한다.

선거 공약이란 이유로 전문가를 배제하고 밀어붙이는 정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과학적 근거보다 구호와 대중적 감성에 호소하는 4대강 보(洑) 철거와 탈(脫)원전 정책 등은 각종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지역 주민과 산업계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가 에너지 수급과 물 관리, 경제 전반에 몰고 올 충격에 대한 대비책도 거의 없이 결론부터 내려놓고 강행하는 식이다. 애초부터 과학적·경제적 논의는 발붙일 틈조차 없었다.

더 이상 국가사업과 에너지·물 정책 등 국가 대계(大計)들이 일부 시민단체 등 비전문가에게 휘둘리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현실보다 구호와 대중감성주의에 집착할수록 재정은 거덜 나고 국가경쟁력도 추락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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